올랜도 반석교회 사역자 (Servants)  

 

 

 

구학관 목사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진들은 한결같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 6:17).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 앞에서 자랑할 것들이 있었습니다. 순전한 하나님 말씀을 전한 죄로 톱에 썰려 죽고, 칼에 찔려 죽고, 불에 타서 죽고, 맹수에 찢겨 죽고,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순교당하지는 않았어도 돌을 맞고, 매를 맞고, 뺨을 맞고, 침뱉음을 당하고, 옥에 갇혔습니다. 핍박을 받지는 않았어도 잠 못자고, 굶주리고, 추워 떨고, 병들고, 헐벗었습니다. 부끄럽게도 나에게는 주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신약의 사도들에게 있었던 그런 예수의 흔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도 주님께 받은 분명한 부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만민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곧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모르기에 십자가의 도를 미련하게 생각하는 비기독교인들에게, 그리고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지 못했기에 십자가의 도를 꺼려하는 준기독교인들에게, 십자가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전하는 것입니다. 순전한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로 죽었던 영혼들이 살아나고 구원받은 영혼들이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불완전하지만 교회를 통하여 개인과 가정과 일터가 거룩과 사랑과 공의가 충만한 하나님 나라로 변화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 안에서 한 가족된 성도들과 함께 천국의 삶, 곧 성령 안에서 평강과 희락과 자유가 충만한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딤전 1:12-17)

 

 

 

김경민 목사

 

구원 문턱을 넘어선 자들의 선택은 필연적으로 성화이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어렵사리 넘어 온 구원의 기쁨에 취해 혹은 그 기쁜 시절의 감상에 젖어 성화의 필연적 과정을 온 몸으로 거부하는 시대가 바로 오늘 우리의 세대며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자라지 않는 성도, 자라지 않는 교회는 성도의 책임이기 이전에 목회자의 책임인줄 압니다. 자라지 않아도 보암직하고, 자라지 않아도 먹음직하게 보이기에 그게 병인지도 모르고 방관하고 방치한 목회자의 책임인 줄 압니다. 어느 누구의 탓이기 이전에 한 목회자인 저의 책임인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목회 초년생 시절에 제게 이런 영적 깨달음과 도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운 저의 모습에, 교회의 모습에 두서없이, 기약없이 반항하고, 투정부리고, 떼쓰고, 회개하던 시절을 거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갈 때쯤 하나님께서 다음 말씀을 제 마음에 강하게 심어 주셨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후 4:2). 하나님은 제게 말씀을 전파하라 하셨습니다. 거기에 토를 달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음 없는 저의 모습에, 교회 공동체의 모습에 더 이상 고민도 눈물도 흘리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냥 말씀을 따라 사는 일에 죽을 힘을 다하라 하셨습니다. 반항하고, 투정부리고, 떼쓰며 울 힘으로 이를 악물고 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눈물과 한숨으로 늘 빼버렸던 진을 교회 공동체의 성화와 저 자신의 성화를 위해 쏟아 부으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복음의 화살을 전쟁터의 궁수의 심정으로 오직 성화의 과녁을 향해서만 쏘기 위해 범사에 얼 차려 살려 애쓰고 있습니다.

 

주변에 여전히 구원 문턱을 넘어 숨에 차 더 이상 전진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며 한 숨 지으며 답답함과 원망의 눈물로 세월을 낭비하는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더 이상 한숨짓지 마십시오. 더 이상 눈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그 한숨과 그 눈물흘림을 위해 남겨둔 시간과 힘으로 이를 악물고 자라십시오.

 

 

 

 

 

 

 

 

 

 

 

장진성 전도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후,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먼저 주위를 살펴 보았습니다. 이전보다 좀 더 착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좀 더 열심히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신약에 기록된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살펴 보았습니다. 서신서를 13권이나 쓴 바울의 삶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고상한 지식을 인하여 평생 쌓은 지식과 업적을 “배설물”로 여긴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늘 동행했기에 자신의 육체의 “가시”와 끊임없는 핍박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전도자로 산 것을 보았습니다. 말 그대로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기쁨과 평강 가운데 순교 당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교회사에 기록된 믿음의 선진들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들을 둘이나 죽인 공산당원을 증오하지 않고 오히려 양자로 삼고, 아들이 둘씩이나 주님 이름으로 순교당하는 영광을 주신 것을 감사한 손양원 목사님을 보았습니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중국 내륙으로 들어가 30년 동안 그곳 사람들과 똑같이 살며 그들의 문자를 만들어주고 신약을 번역하고 복음을 전하다 그곳에 뭍힌 제임스 프레이저 선교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26세에 중생하고 난 후 영국내의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26년 동안 일편단심으로 싸워 노예해방법안을 통과시킨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를 보았습니다.

 

진정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삶이 뒤집어졌고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산 것을 보았습니다. 좀 더 착하고 좀 더 돕는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삶을 산 것을 확인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설명되어지는 삶”을 함께 살아가길 원합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며 예수님 때문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크리스천으로 자라가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