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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mon: Pastor Bob Barret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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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요 15:1-8) 신문기자가 어느
성공적인 기업가를 인터뷰하러
갔습니다: “무엇을
하셔서 이 모든 돈을 버셨습니까?” 기업가는 대답했습니다: “물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은 참 좋은 기사감입니다. 저와 아내가 결혼했을
때, 우리는 그저 머리를
둘 곳과 냉장고에 먹을 것, 그리고 현금 2달러를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돈을 가지고
식품점에 가서 사과를 좀
사서 광택을 낸 후,
몇 푼을 더 받고 팔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
다음에는 사과를 조금 더
사서 광택을 낸 후,
10불에 팔았습니다.”
기자는 이 이야기는
정말 위대한 인간 승리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러자
기업가는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장인이
돌아가셔서 2000만
불의 유산을 남겨주셨습니다.” 이 기업가가 번창했던
것은 자신의 창의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연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안전할 것입니다. 연줄이 있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그 의미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크리스천의 삶에는 두 가지
기본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은
주님 안에 거하든지 아니면
열매를 맺든지, 둘
중에 하나를 전공하려고
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우리의 힘의 근원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과 열매 맺는 것은, 어느 것도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누가 “나는 연줄이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곧 자신에게는 능력을 가진
사람 또는 부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성공적인 기업가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 분은 어느 학교의
졸업식 연사로 초청받았습니다. 이 분은 여러 주제
가운데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에 대하여
연설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이 분은 강당으로
들어가는 문을 통과하면서, 문에 큰 글자로 “미세요”라고
쓰여진 것을 보고, “밀어라”는
것이 자신의 연설에 좋은
테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설이
고조에 달했을 때 말했습니다: “저의 메시지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들어온
문을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은
크게 웃기 시작했습니다. 어리둥절한 연사는
문을 쳐다 보았습니다. 강당 안에서
본 문에 쓰여진 단어는 “미세요”가
아니라 “당기세요” 라는
단어였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성공합니다. 밀었기 때문이 아니라
당겼기 때문입니다. 힘이 있는 누군가에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아느냐는 것이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들으셨습니까? 이것이 연줄이 있다고
말할 때 우리가 뜻하는 첫
번째 의미일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는 힘이
있다는 말입니다. 연줄이 있다는
것은 또한 임재를 의미합니다. 우리 삶에는 누가
있습니다.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우리와 같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한 누군가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구와도 연고가 없는 사람보다
더 슬픈 사람은 생각할 수
없을 겁니다. 플로리다 대학에
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수의학과 학생들이
애완동물을 잃고 애도하는
사람들이 전화를 걸면 도와주는 hotline(긴급 전화 써비스) 프로그램입니다. 이 학생들은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상담하고 돕는데 대한 전문적인
훈련을 받습니다. 이
써비스에 대한 수요가 대단히
큰 것 같습니다. 애완동물을
친구로 의지하는 독신들과
노인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완동물이
죽은 것을 극복하는 것은
가족이나 친구가 죽은 것을
극복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애완동물을
잃어본 사람은 누구나 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삶인지 압니다. 연결된다는 것은
또한 생산적인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서 위대한 일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초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흔적을 남기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목적의식과 사명감,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의식을 줄 수
있는 분에게 연결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이것이 바로 오늘의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함께
하셔서 우리가 생산적인
삶을 살수 있게 도와주시는
분에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과실을 많이 맺나니.” 우리에게 중요한
일들을 할 때 “당기는 힘”을
얻는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 비밀은
연결되는 것입니다. 힘의 근원이신 분, 우리를 절대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생산적인 삶을 살게 도와주시는
분에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는
그리스도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 연결되는 것, 주님의 임재 가운데
사는 것이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사는 우리의 힘의 근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싶어합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듯이, 그리스도에
연결되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 실패하지
않는 힘의 근원을 발견합니다. 어려운 때에 직면할
수 있지만, 그것들은
우리를 주님의 돌보심에
더 굳건히 뿌리내리게 해
줄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가깝기 원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로부터
빼앗아 갈 수 없는 삶의 현실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기다릴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에 하나님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공허하고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듯이, 하나님도
우리를 의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오늘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열매를 맺습니다. 이 두 가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과 열매를
맺는 것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맺기 원하시는 열매는 기본적으로 3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먼저 성령의
열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봅니다. 이런 속성들은 모든
크리스천의 삶에서 명백해야
할 뿐 아니라, 날로
심화되어야 하고, 다른
믿는 자들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더 눈에 띄어야
합니다.
이러한 자질들
외에 우리는 또한 자신의
영적인 은사를 알아내고
행사하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자라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은사를 주시면서, 또한 믿음의 형제
자매들만이 채울 수 있는
영적인 공백도 주셔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서로 의존하게
하십니다. 물론, 자신의
영적인 은사를 찾아내지
못하고 가만히 있으면, 이러한 공백은 계속
채워지지 않고 교회의 내적인
성장은 저해됩니다. 크리스천이 성품이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 자라가고
자신의 영적인 은사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때에 세 번째 마지막
열매로 나타나는 것은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의 임재를
온전히 체험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더 역동적이
되고, 찬양이 풍성하게
됩니다. 마음을 더
온전히 표현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에
주파수를 더 잘 맞추게 되고
성경의 진리를 삶에 더 잘
적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예배는 더 풍부해지고 만족을
주게 됩니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입니다. 우리 안에서 드러나는
그의 사랑, 그의 용납하심, 그의 용서, 그의
자비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가까이 하면서 타인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듯이 크리스천들이
그리스도에 접목되어 있는
교회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 교회는 사랑과
자비로 알려집니다. 물론 교회는 교회
구성 멤버들이 열매를 맺을
때에만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교훈에서 하나님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포도원
농부는 더 많은 과실을 내기
위하여 가지치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가지치기
하면 아픈 것같이 들립니다만, 우리가 알다시피
인생에서도 아픈 것이 많습니다. 삶에는
많은 어려운 결정들이 있고
고통스러운 선택과 손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지 된 우리가 자신을 열매
맺는 가지로 볼 수 있다면, 인생은 21세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무도
나뭇가지가 피곤하여 지쳐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나뭇가지들은 어려운
때를 쉽게 뛰어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에서
어려운 때는 성장의 기회라고
말합니다. 가지치기가
약간은 아프지만, 그것은
포도나무에게는 유익합니다. 인생에서 어려운
시기들은, 죽음의
두려움과 실체, 고통과
고난과 다툼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더 열매 맺게 하실
수 있는 기회들입니다. 참된 포도나무에
접목된 우리 가지들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삶은 우리가
종종 생각하는 것과 같이
압력 밥솥과 같은 삶이 아닙니다. 힘들어 지쳐 떨어지게
되는 길이 아닙니다. 인생의 시련들은
열매를 맺도록 자라는 기회들입니다. 또한, 가지들은
자신이 열심히 일해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수 많은
사람들이 믿음생활을 그러한
부담으로 만듭니까? 믿음과 그리스도와
같은 삶은 가지가 좋은 포도나무로부터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쉽습니다. 물론, 가지는
자신이 맺은 열매에 대하여
어떠한 인정도 받지 않습니다. 보통은 좋은 포도나무의
공으로, 그리고 포도원
농부의 공으로 돌립니다. 그렇다면, 우리
크리스천들도 이제는 농업의
상식을 따르기 시작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열매 맺는
크리스천 가지라면, 우리는 크리스천으로
사는데 대한 모든 근심/걱정을 다 내려놓습니다. 또한 우리의 선행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모든
공도 포기하고 그리스도에게
돌립니다. 바로 여기에
행복과 만족이 있습니다. 새 가지는 포도나무에서
외로울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는 많은
가지를 내고, 열매가
맺히기 위해서는 가지들이
서로 얽혀 서로를 지탱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들이니” 라고 하십니다. 가지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지들로서 서로에게 자신을
묶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합니다. 다른 가지들을
거부하면서 혼자만 신실하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다른 가지가
우리와 같이 열매를 맺는지
못 맺는지 판단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가지치기를 하는
것은 하나님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믿는 자들의 공회와 안정된, 장기적인 관계에
들어가기로 약속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당분간만
교회의 지체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다음과
같은 말을 듣습니다. “애를 갖게 되면
교회로 다시 돌아갈 겁니다.” 아니면 “이제 우리는
은퇴했으니, 젊은
사람들이 나서서 교회의
일을 하게 합시다.”
우리의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안정된, 장기적인
교회 헌신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참여를
등한히 할 때, 우리는
다른 가지들로부터 끊겨지고, 더 가지치기가 필요한
죽은 나무로 변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오늘
교훈을 마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이 사랑, 이 열매는
하나님의 힘으로 자랍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삶에서 열매를 맺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 우리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있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역의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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